문화 | [오은정의 5색이야기]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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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티가이 작성일14-08-26 15:28 조회1,924회 댓글0건본문
식물을 키우는 특별한 재주가 없어 예쁜 꽃들을 잘 관리하지 못해 선뜻 화분도 사지를 못한다. 이쁘게 피어있는 꽃에 물만 주면 되는 건데도 집으로옮겨오면 오래 가지 않아 시들고 금새 죽고만다.
캐나다에서 공부시켜 볼 요량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낯선 캐나다에서 서툴게 시작한 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이거도 저것도 다 낯설고 힘들고 모르는 것 투성이. 실수가 잦을 수밖에는 없었다. 반복되는 일도 여러 번을 해봐도 낯설기는마찬가지, 익숙하기까지는 숙련의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아이들만 다그쳤다. 성실하지 못한 과제 제출이거나 알림 내용 전달에 대해서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음으로 마찬가지로 나도 어벙벙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불성실하고 게으르고 좀 모자라는 아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낯선 언어와 환경은 아이들이 적응해 나감에 따라 그런 인식은 곧 바꿔질 수 있다는 믿음과 바꾸어야 한다는 모진 결심을 했건만, 의지에 맞춰 원하는 시간 내에 현실화 시키지도 입증하지도 못했다.
드물지만, 종종 아이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세컨더리를 졸업한 아이들,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이 쓰러졌는데 의식이 없고 며칠 안에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뭔가 싶다. 자라는 아이들의 돌연사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가슴이 메이는 억울한 일이다. 왜 그런지 이유가 뭔지를 알 수 없는 의문을 주고 아이들이 숨을 놓는다. 단지, 다른 나라에 와서 사는 동안 아이들의 언어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든지 사람들과의 관계 문제가 고단했으리라는 뒤늦은 짐작은 부모의 마음을 더 아리게 할 뿐이다. 물론 이런 문제인지 아닌지, 건강문제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간 늘 우울해하고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이런 이유들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아이들이 갑작스레 죽었다는 이야기는 가슴을 몹시 쓸어내리게 한다. 누구의 자녀랄 것도 없이 아이의 죽음은 무겁고 안타깝고 허망하게 한다.
행복하려고 한 선택이 늘 행복한 결말을 가지고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각한 끝을 원한 것은 더욱 아니다. 캐나다에서 직장, 학교생활도 해봤다. 학교 동료들로부터 오는 직장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신경질적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다. 따라가지지 않고 섞여지지 않는 고독감은 내 아이들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하면 되지 않냐고 등 떠밀고 무자비하게 밀어부친 것이 말할 수 없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문제가 있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시 당할 이유가 없거나 자격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는 입증할 언어능력이 없었다. 상한 맘은 깊어 가는데, 인격을 무시 당하는 상황에서는 그럴싸하게 반전시킬 유머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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