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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어떤 뉴스앵커의 팔레스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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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티가이 작성일14-08-06 15:45 조회9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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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시 안락한 스튜디오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이미지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서야 가자에 사는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들의 평균 나이가 17세인데요. 그건 약 25만 명의 어린이들이 10세 미만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한 저널리스트가 만든 영상 속 멘트다. 사실 그는 '어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다. 영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말이다.리버풀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남아프리카의 인종격리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위도 받지 못하고 교문을 나서야 했다. 그의 첫 직장은 런던에 있는 어린 노숙자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 좋게' 그는 저널리스트가 됐고, 저널리스트로서 성공한 후에도 첫 직장이었던 노숙자 시설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스리랑카처럼 위험천만한 분쟁 지역을 누비면서 전쟁범죄를 고발했다. 그리고 그 공로로 여러 차례 탐사보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라디오와 TV를 오가며 스타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그는 민영방송 채널4의 최장기 뉴스 앵커로 특히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나는 기자다. 앵커로선 최악이다."라고 주장한다.) 영국 왕실은 그의 활동과 공로를 인정해 작위를 수여하려 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그리고 세간의 설왕설래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왕실은 취재대상일 뿐이다."그의 이름은 존 스노우 (Jon Snow)다. 1947년생인 그는 최근 이스라엘의 폭격이 계속되고 있는 가자에 다녀왔다.
 
그리고 지난 26일 "저는 다시 안락한 스튜디오로 돌아왔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유튜브(Youtube) 영상을 만들었다. 해당 영상은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상은 불과 3일 만에 조회수 60만을 돌파했고, 1,500개가 넘는 격려와 동감을 표하는 댓글이 달렸다.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의 언론사들이 그의 유튜브 현상을 기사로 전하면서 세간의 관심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앞서 소개했듯 존 스노우는 영국 사회에서 손꼽히는 유명 언론인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공중파 방송의 간판 뉴스 앵커다.
 
그의 높은 인지도는 어지간한 BBC 앵커들을 한참 앞서고도 남는다. 그런 그가 왜 전파가 아닌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만들고 그의 생각을 전한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열광하는 걸까?가자는 지금 생지옥이다. 이스라엘의 폭격은 멈출 줄 모르고 죽음의 행렬은 1,3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부상자는 6,000명이 넘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팔레스타인 시민과 어린이들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사망자는 55명이다. 전쟁, 혹은 분쟁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방적이다. 7월 30일 현재까지도 폭격이 계속되고 있으니 희생자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시민을 방패로 삼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시민이 죽고 다친 곳에서 하마스 군이나 그들의 무기가 발견됐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매일 미사일을 쏘아대고, 땅속으로 터널을 뚫어 위협을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위협으로 이스라엘에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 역시 찾을 수 없다. 전 세계 평화단체와 시민들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다.", "이스라엘판 나치의 만행이다."라고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다.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서방의 언론들은 가자에서 펼쳐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학살'이 아닌 '전쟁' 혹은 '분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공정한 보도를 위해서라며 이스라엘의 변명과 희생을 가자와 똑같이, 때때로 앞세워 보도한다.
 
폭격 장면을 영화처럼 즐기는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의 무자비함을 보도한 CNN과 NBC 기자들이 징계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에 대한 불신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영국의 대표 공영방송 BBC도 예외는 아니다.작금의 사태는 끔찍한 현장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시시비비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비판정신은 사라지고 공정성을 내세워 가해자에게 너무 많은 해명의 기회를 주고, 나아가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때리다가 한두 대 맞은 가벼운 (팔레스타인에 비하면) 피해를 지나치게 확대해서 보도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Israel under renewed Hamas attack." (이스라엘이 재무장한 하마스의 위협을 받고 있다.)"Some 13 Israeli soldiers were killed overnight in Gaza." (이스라엘 군인 13명이 가자에서 사망했다.)"Israel does not target UN facilities." (이스라엘은 UN 시설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이스라엘 주민의 목소리를 헤드라인으로 삼아) We don't want civilians to die." (우리는 시민의 죽음을 원치 않는다.)물론 BBC의 보도가 이스라엘의 목소리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핏 팔레스타인의 편을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양쪽 모두를 공평하게 다루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판이 사라지고 기계적 중립에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시민의 무고한 죽음을 원치 않는다"는 말은 전하면서 "그렇다면 왜 공습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는가?"하는 문제 제기는 하지 않는다. 무기가 최첨단이라면서 목표가 아니라는 UN 시설을 폭격한 건 뭘 의미하는 것인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시민을 인간방패로 삼고 있다는 이스라엘 쪽 주장의 근거는 뭔지, 팔레스타인 시민이 10세 이하의 어린아이들까지 앞세워가며 방패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하마스가 강요하고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부호를 던지지 않는다.
 
그런 BBC의 보도 행태에 반발해 약자의 편을 드는, 불공정한(?) 보도를 바라는 시민사회가 불만을 터뜨리는 건 당연한 일일 터. 지난 19일 런던과 맨체스터, 리버풀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이 BBC 앞으로 몰려가 가자 관련 보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페이스북으로 미리 시위동참 의사를 알린 시민들만 3,700명에 이를 정도였다. 시위 때마다 BBC에 진실보도를 촉구하는 피켓이 등장하고 BBC에 항의 전화와 메일을 보내자는 캠페인도 이어지고 있다.물론 BBC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보도 하나하나가 모두 법으로 정해진 지침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더 가디언>의 제임스 볼(James Ball) 기획보도 편집기자의 글은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저널리스트는 어떤 질문을 하고, 누구를 인터뷰하고,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느냐를 통해 자신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공정하게 (사실은 '척'하는 거다) 보이기 위해 저널리스트들의 시각을 그런 장치 뒤로 숨기도록 요구하는 게 현재의 시스템이다."제임스 볼의 지적대로 방송 저널리스트는 보도를 함에 있어 저널리스트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직접 전달할 수 없다. 그건 영국의 방송법이 정하고 있는 바다. 반면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 매체에 대해선 그런 강제가 없다. 그 자신도 기자인 제임스 볼은 이 같은 방송규제에 대해 "정확하고 공정한 '척' 하기 위한 행위일 뿐"이라고 꼬집는다.존 스노우가 가자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왜 유튜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영국의 방송법은 존 스노우가 그의 생각과 의견을 시청자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생각을 시청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가자의 병원에서) 의사에게 물으니 1,310명의 어린이가 부상을 당했고, 166명이 사망했다고 하더군요. 그 숫자는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엔도 우리 정부도,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문제 따위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가자 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저의 보도를 보고 있다는 건 뭔가 행동을 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겼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과 행동은 궁극적으로 가자에 있어 최대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이 상황이 계속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보도가 가치가 있다면, 그리고 그걸 여러분이 듣고, 보고,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존 스노우가 방송이 아닌 유튜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유튜브에 수많은 사람이 박수로 열광한 이유도 알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 사람들은 저널리스트가 직접 보고, 생각하고 판단한 솔직한 이야기,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공정성과 정확성이라는 수사에 매몰돼 사라진 비판정신과 현실 호도가 싫었던 것이다.제임스 볼은 존 스노우의 유튜브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의미 있는 지적도 하고 있다. "우리 방송은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우리의 눈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널리스트들이 목격한 것에 대한 생각과 의견(Verdict)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그러면서 그는 "TV와 인터넷이 융합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시대에 뒤처진,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도 않고 있는, 규제는 젊은층을 뉴스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훌륭한 방송 저널리스트들을 속박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존 스노우는 유튜브가 아니라 방송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되도록 방송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임스 볼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는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나는 존 스노우의 공식 블로그에서 한 마디를 훔쳐다 옮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The world is witnessing what is happening in Gaza. There is bound to be judgment.(가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이 올 겁니다.)"
 
장정훈 / 프리랜서 방송 피디 겸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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