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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 정도전과 정몽주, 두 진정성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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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티가이 작성일14-07-28 12:16 조회1,2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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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정도전' 화면 갈무리 편집)
 
 
우리는 많은 경우 옳다는 것에 대한 깊은 확신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옳은 판단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적의를 가지고 반대편 진영을 향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악하다고 판단한 반대편 역시 강한 확신을 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고 그 신념에 충성한다. 그야말로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두 진영의 대립이다. 이럴 때 역사는 대부분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신은 강한 확신으로 선의 위치에 존재하지만, 상대는 분명한 악으로 규정되어 싸움은 맹렬하고 결과는 처참하다. 강한 확신들의 부딪침이 얼마나 큰 참극으로 끝났는지 인류사의 종교전쟁과 이념전쟁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실 정치에서나 인류사의 전개에서나 가장 힘든 갈등은 대부분 치열한 두 진정성이 부딪힐 때다. 서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두 존재에게 타협과 연대를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자기확신이 타협의 지점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여말선초의 개혁적 지식인 정도전과 정몽주 역시 자신이 믿는 개혁과 혁명의 지점에서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기꺼이 그것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과연 이 걸출한 두 진정성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또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정도전과 정몽주는 모두 고려 말의 개혁적 지식인이자 정치인이었다. 개혁에 대한 간절한 열망은 두 사람을 가깝게 이어준다. 고려 말 최고의 성리학자 이색 밑에서 두 사람의 연대와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정몽주는 정도전보다 5살이나 위였지만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내며 함께 고려의 개혁을 모색하는 동지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둘 다 이렇다 할 가문의 도움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개혁 군주 공민왕과 함께 고려의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두 사람은 젊은 신진사대부의 열정으로 개혁을 밀어붙이다 권문세족의 반격에 큰 좌절을 겪어야 했다. 권문세족의 친원 정책에 반기를 들다가 모두 귀양을 가는데 정몽주는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중앙 정계로 복귀하게 되지만 정도전은 나주에 귀양 가는 것을 시작으로 9년이나 유배지를 전전하는 신세가 된다. 그만큼 정도전은 기득권들에게 제대로 눈 밖에 난 인사였다.
 
모든 진실한 만남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된다. 정도전은 기나긴 유배 기간 동안 백성들의 처참한 삶과 만났다. 그러면서도 강한 생기와 지혜를 지닌 백성들과의 만남은 정도전의 사상을 더욱 급진적으로 변화시킨다. 백성들의 삶과 만나지 못하고 백성들의 생활과 무관한 정치는 그에게 더는 의미가 없었다. 개혁에서 혁명으로의 사상적 전환을 이룬 정도전은 이성계를 통해 정계로 복귀하게 되는데 한때 고려의 개혁을 함께 구상했던 절친 정도전과 정몽주는 이때부터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각자의 길을 향해 나서게 된다.
 
함께 고려를 성리학적 이상으로 개혁해 민본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정몽주와 정도전은 지금의 고려에서의 개혁이냐 역성혁명으로서의 새로운 건국이냐의 사이에서 치열하게 갈등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우왕과 창왕의 폐위 그리고 공양왕의 옹립에 이르기까지 정도전과 정몽주는 줄곧 함께했다. 그러나 고려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의 꿈을 가진 정도전의 계획을 알게 되자 정몽주는 더는 정도전의 동지가 아닌 숙명의 라이벌이 되고 만다. 기실 정도전에게 역성혁명의 실마리를 제공한 맹자를 권한 것도 정몽주였고 그는 정도전의 친구이자 스승으로 개혁적 이상을 수십 년간 공유해 왔다. 그러나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놓고 물러설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신념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 명은 죽어야만 했다.
 
정도전과 정몽주의 대립과 갈등은 자신의 목숨도 불사를 정도의 신념과 진정성을 가진 것이었기에 더욱 강렬했고 극심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 자신의 신념을 분별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진정 고려는 정몽주의 비전대로 충분히 개혁을 도모하여 새로운 고려로 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도전의 판단대로 개혁하기에는 너무 낡은 부대인 고려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새로운 나라가 필요한 시점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정몽주와 정도전의 분별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몽주는 죽은 이후에도 충(忠)과 의(義)의 화신으로 대접받았다. 그가 우왕과 창왕의 폐위에 찬성하고 공양왕 옹립에 가담했지만, 역성혁명 자체에는 반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고려의 충신이라는 것이다. 그를 죽여 조선을 세운 조선의 통치자가 그를 충의 화신으로 대접한 것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도 체제를 지킬 충성스러운 신하가 필요해서는 아닐까? 정몽주에게 고려는 개혁의 대상일 뿐 파괴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는 그 신념을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목숨까지 던지며 그가 지켜낸 자신의 충과 의의 가치는 바로 성리학적 질서의 핵심이었고 그 기본가치를 지켜내는 것이 삶을 연명하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다.
 
반면 정도전은 끊임없이 자신의 노선을 전복한 인물이다. 과감하게 고려를 무너뜨리고자 했으며 유학자이면서 스승 이색의 처형을 주장하기도 했다. 위화도 회군을 찬성한 그가 생애 마지막에는 요동 정벌을 감행하려 한다. 이성계와 정도전을 한 칼에 제압한 태종 이방원은 정도전을 권력의 화신 또는 모략가로 그리고 있다. 정도전은 나중에 조선 말 고종 때나 되어서야 대원군에 의해 복권되는데 그의 간신배 이미지는 그가 세운 조선의 역사 내내 지워지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의 사상을 '민본사상'이라고 주저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노선과 사상은 철저히 백성들의 삶에 천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저잣거리에서 개혁과 혁명의 근거를 찾으려고 했던 정도전의 정신은 토지개혁 구상, 외세에 기댄 기득권의 배격, 실력과 자질에 의한 관료체제 설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질적인 백성의 삶의 개선을 위해서라면 권모술수도, 권력투쟁도 마다치 않았던 그의 진면모는 오늘날에 와서야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간신배가 아니었다. 백성을 위한 정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시대의 정치인이었다.
 
갈림길 이전 정도전과 정몽주의 깊은 애정의 관계는 그들이 남긴 여러 글을 통해 확인된다. 정몽주의 죽음 직전의 극적인 상황은 두 사람의 신념에 의해 서로가 만날 수 없는 길로 치달은 치열한 딜레마로 이해할 수 있다. 이성계의 낙마 사고를 기회 삼아 정몽주의 간관들에 의해 정도전은 죽음의 위협에 처하게 되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이방원의 급습으로 정몽주는 죽는다. 그러나 서로를 깊이 아끼던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할 때 마지막 순간까지 둘 다 깊은 고뇌와 슬픔을 겪었을 것이라는 해석은 무리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건 이면에 두 사람이 겪어야 했을 고뇌와 슬픔을 들여다본다. 한 존재가 가진 신념의 힘은 얼마나 큰가. 그 신념이 깊은 양심과 진정성을 담아낸 신념일 때 말이다. 자신의 신념을 진리 삼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외로움이 엿보인다. 과연 정도전과 정몽주는 자신의 신념으로 자기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를 벨 수밖에 없는 지점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 지독한 딜레마 앞에 두 사람은 자신을 그리고 친구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 우리는 고요해진다. 우리는 무엇으로 옳다는 신념을 지키며 어떤 희생으로 신념을 실현하는가.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의 치열한 갈등의 지점은 진정성이 충돌하는 지점에서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두 생각이 충돌할 때 비극이 발생한다. 나의 신념과 나의 주장을 강조할 때 우리는 그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아니면 그 신념과 주장이 모든 생명을 위하는 것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어떤 성찰을 하는가. 하나님나라는 깊은 연대와 우정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나라다. 그 나라의 통치자가 성자, 성부, 성령으로 연대하고 있으며 이 땅에서의 하나님나라 백성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공동체적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 홀로 옳은 존재는 하나님 나라와 무관하다. 홀로 옳은 자신의 나라가 존재할 뿐이다.
 
김덕영 / 희년함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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